관리 메뉴

약속은 지킨다!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 본문

영화 그리고 미디어/영화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

멋진너굴 2017. 8. 12. 19:11
반응형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영화는 1990년대 중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잊혀질 때면 다시 만들어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택시 운전사"처럼 1천만 관객을 향해 간 경우는 드물다.

광주항쟁의 역사의식에 대한 내용은 차치하자(필자의 해당 주제에 대한 내용을 해당 링크의 블로그 참조하시라/http://keepthepromise.tistory.com/34)

오늘은 영화에 집중 해 보자. 우선 우리의 평론가들의 평은 그다지 너그럽지 않다. 망작 군함도가 6점을 약간 넘긴 수준인데 택시운전사는 딱 6점이다. 그러나 평점 6점의 평균 이하의 "작품성"을 가진 영화로 "택시 운전사"를 단정짓기에는 영화가 주는 메세지가 상당하다. 바로 그 항쟁의 패트와 역사적 의미를 바로 알고 계승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가 작품성이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필자는 광주를 모른다. 서울과 대구에서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냈고 친척, 지인들도 전라도 광주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물며 1980년 5월에 필자는 초등학생도 되기 전이었다. 오늘은 초등학생 5학년의 아들과 함께 같이 보았다. 아들에겐 역사시간이고 어른인 아빠는 세대를 잊는 역사 트레일러로서 보았다.

주연 배우들이다. 송강호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다. 그러나 영화의 주변 인물들이 다소 평면적이고 겉도는 것 때문에 평론가 평점이 깎인 것 같다. 특히, 독일 기자역의 크레취만은 "나 외국인이야"라고 극중 내내 말하는 듯하다.

서울택시기사 만섭은 광주에 당일치기로 갔다오면 거금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어영부영 광주로 향한다. 여기저기 설치된 구대 바리케이트를 어영부영 기지를 발휘해 들어간다. 어떻게든 광주에 들어가야 하니 군인들도 어영부영해 보인다.

광주 입성 후 광주 시내는 당연히 어수선하고 계엄군 투입 이후 알려진 바대로 충돌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민중들은 피를 흘린다.

독일기자(이하 "피터")를 태운 택시가 중심가로 갈수록 최루탄이 날리고 총성이 울리며 시위대와 계엄군은 이리저리 쫓고 쫓기면 아비규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장면은 피터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기도하고 당시 필름의 대쟈뷰를 영화 영상으로 재현하는 모습도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피터를 태운 택시는 서울로 향하게 하고 김포공항에서 피터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싯고 그가 광주에서 촬영한 시위 현장 영상은 전세계 전파를 타고 마침내 광주항쟁은 내외부에 알려지게 된다.

택시기사 만섭도 서울에 있는 홀로 남은 딸에게로 향한다.

쿠키 영상은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핀츠페터는 택시기사와의 재회를 바란다고 2016년 고인이 되기 전에 인터뷰 내용이다. 실제 택시 기사로 알려진 "김사복"은 전혀 언론에 나타나지 않는데 아마도 광주항쟁이 전세계에 알려진 단초를 제공한 "죄목"으로 당시 군부로부터 색출당하여 신변에 큰 위협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이 참에 그의 행적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해 당시 전두환 전대통령 측은 소송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 "28만원 집단"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역사는 웃기도하고 울기도 하고 분노할 줄도 알며 바르게 세우기 위해 응징도 한다는 것을.

 

 

반응형
Comments